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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폰 잡기를 꿈꾸던 소년 ‘재판봉’을 잡다

NB2 2009. 2. 1. 06:52

 

컷- 메가폰 잡기를 꿈꾸던 소년 ‘재판봉’을 잡다

 

사법고시생 하면 흔히 고시촌에서의 까만 뿔테 안경과 덥수룩한 머리, 얼룩진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사람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지난 13일 만난 ‘2007년도 제 49회 사법고시 합격생’이자 우리학교 졸업생인 우상범(법학 2001) 군은 달랐다. 멋진 캐주얼 차림으로 등장한 우군은 사진찍는 줄 알았다면 더욱 멋을 부리고 왔을 것이라는 농담을 건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화의 도시 부산에서의 학창시절
부산 국제 영화제가 열리는 남포동 주변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그는 영화제를 보며 영화감독이 되기를 꿈꿨다고 한다. 수험생 시절에는 영화제에 가는 버스에서 당시 ‘박하사탕’을 제작한 이창동 감독과 만나 40분이 넘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영화감독이 되려면 꼭 영화 관련된 학과로 진학해야 하는지를 질문하기도 했단다. 심지어 영화감독을 하기 위해 학업중단을 고민을 할 정도로 그의 영화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다. 하지만 일본의 유명 영화감독에게 영화와 학업에 대해 질문했을 때 “학창시절의 경험도 한 가지의 훌륭한 영화 소재가 될 것”이라는 대답을 듣고는 학교를 그만 두겠다는 생각을 접게 되었다.

범(範), “법관이 되라고 지은 이름”
대학교 수능시험이 끝나고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던 그는 부모님의 권유로 법대에 진학 하게 되었다. 그의 부모님들은 “우상범의 범자가 범(範)자인데 그 이름은 법관이 되라고 지은 것”이라고 했단다. 대학시절 스포츠신문에 삽화를 그리기도 한 그는 대학교 3년을 마친 후 본격적인 사법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 일주일 동안 같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공부 한 적도 있고, 절에 들어가기도 했다며 당시의 절박한 심정을 내보였다. 심지어는 6월 말 3차 시험을 치루고 나서 12월 최종 합격자 발표가 날 때까지 미역국을 마시면 불합격 한다는 미신에 6개월 동안 미역국을 거의 먹지 않을 정도였다.

졸업을 앞 둔 그는 후배들에게 “학교를 다니면서 학점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는 것 같다”며 “사회에 나가기 전 시간이 충분한 대학시절에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법고시의 힘든 여정을 끝낸 그는 메이지 유신 때 대심원 원장이던 고지마 고레카타와 같은 훌륭한 법관을 닮고 싶다고 한다. ‘재판봉’을 내리치는 훌륭한 대법관이 되어 경희의 이름을 빛 내주길 바란다.


김형규 기자 khg@media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