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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슈아 박 한국토론협회 회장 인터뷰

NB2 2007. 11. 15. 08:56

 

제대로 말하고 듣는다 "토론이 답"

 

조슈아 박 한국토론협회 회장 인터뷰

 

 

다름을 인정하고 환대받지 못하는 것도 포용하는 ‘똘레랑스’, 개념만 외친다고 실현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 바로 토론이다.왜 하필 토론인가. 미국 하버드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강단에서 토론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는 조슈아 박 교수(28)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토론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이슈화된 경험이 있다. 왜 사회에서 토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사회에서 토론의 역할을 입증해주는 것을 두 가지 예로 설명하고 싶다. 동유럽과 미국에 관한 이야기이다. 먼저, 유럽에서 토론의 역할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동유럽은 소련의 지배에서 독립한 뒤 국가 민주화를 위해 정책적으로 토론을 장려했다. 10년 간 정부차원에서 대학생 토론 동아리 지원, 토론 대회 개최 등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또한 이렇게 토론을 장려한 것은 대학생, 고등학생 등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인재들이 사회적 문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한 마디로 민주화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토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반면 토론문화에 역사가 깊은 미국 사회에서의 토론의 역할은 약간 다르다. 흑인이나 혼혈인 등 소수자들이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도시의 뒷골목에서 폭력배, 갱단으로 활동하는 그들에게 ‘넓은 사회’로 나아가는 도구가 바로 ‘토론’이다. 사회의 비주류였던 그들이 토론을 통해 시야가 확대되고 의견을 개진할 역량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약자와 토론과의 관계를 더 이야기 해달라.

 

약자와 소수자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토론’의 역할은 무엇인가?토론은 ‘쌍방향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 원칙은 ‘들어야 한다’는 것과 더 나아가서 ‘그 사람의 입장에서 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토론의 역할은 동등한 입장에서 말할 수 있는 공간,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고 일방향성만 계속되면 소수자들은 극단적인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예로 작게는 우리나라에서 나타났었던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지하철 운행 정지 시위’, 크게는 ‘국가를 상대로 한 테러’를 들 수 있겠다.의견 자체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 누구나 생각을 개진할 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럽이나 미국의 개인주의 문화와는 다르게 집단문화에 의해 형성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개인의 의견을 말하는데 익숙지 못하다. 일제잔재에서부터 6.25 전쟁, 군사 독재의 역사적 경험도 말하는 문화에 익숙지 않은 데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소수나 약자의 인권은 보장받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토론의 정착은 ‘약자들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우리나라의 토론문화의 경우, 소수의 의견은 주목받지 못하며 다수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좇는 경향이 있고 듣는 것 보다는 말하는 것에 익숙한 편이다. 올바른 토론문화 정립을 위한 방안을 말해달라.

 

의견이 획일화 되고 맹목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비평적 사고를 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논문이나 과제에 참고문헌에 ‘네이버 지식인’을 이야기하는 학생들이 있다. 정보에 대한 비판 없이 ‘네이버 지식인’을 활용하는 것은 비평적 사고가 부족한 것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권위있는 의견이라 할지라도 비평하고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어릴 때부터 권위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는 교육을 접해왔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한편, 사회적 힘의 역학관계에서 기득권 층이나 다수의 입장에 있을 때는 말만 하게 되고 소수자들은 수용을 강요당하는 듣는 입장에 서게 된다. 이에 대한 개선방안은 기득권자들의 말하는데만 익숙한 것을 개선하는 일일 것이나, 현실적으로 그들에게만 의식개선을 기대하여 실현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동유럽처럼 토론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들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리더를 길러내야 한다. 또한 갑자기 듣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애쓰기 보다는 교육을 통한 습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외국의 토론문화와 한국의 토론문화와의 차이가 있다면?

 

한국어에는 감성적인 표현이 많고, 영어에는 논리적인 표현이 많다고 흔히 말한다. 여담이지만 한국에서 눈물을 흘렀을 때는 진실된 말로서 진정성을 이야기하는 반면, 미국에서는 눈물을 흘리면 도리어 신뢰를 잃는다. 토론이라는 것이 아예 감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정심의 호소로 흘러가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체계화된 토론방식’이 정해져 있지 않다. 감성적이기 쉬운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체계화된 토론방식’이라고 생각한다.체계화된 토론방식의 예로 영국 의회식 토론방식을 들 수 있는데, 이는 구성원의 비율을 3:3으로 규정하여 진행하는 것이다. 이 토론방식은 각자마다 시간이 정해져 있고 역할도 분배되어 있다. 따라서 반대자인 약자들의 의견이 충분히 개진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편, 대학생들은 곧 사회를 이끌어갈 주체의 역할을 맡게 된다. 우리 대학생들이 토론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토론문화가 어릴 때부터 확립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대학생 때 가장 많은 목소리를 접할 수 있고 여러가지 의견에 대한 사고가 열려 있기 때문에 활발한 토론이 가능한 시기이다.한편 토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토론문화가 정착되면 개인 능력도 증대된다. 이러한 대학생들의 토론능력 증진은 개인능력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산재해 있는 여러 문제들을 더 많이 찾아내고 약자를 더 많이 배려할 수 있는  창구가 될 것이다. 그래서 대학생들이 토론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대학생에게 토론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는데,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말씀해주십시오.

 

우리나라에서는 ‘토론’의 개념조차 확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때문에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개최되고 있는 ‘동북아시아 대학 토론대회’와 같은 국제대회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또한 대학을 포함한 교육과정에는 토론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 교육계와 학생이 함께 토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현재 미국에서는 똘레랑스를 사회 이념의 종교라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똘레랑스가 제대로 된 민주화를 돕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똘레랑스의 도구인 토론의 중요성에 대한 역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토론을 사회 문제를 공론화하는 과정으로만 보아서는 안되며 이러한 공론화를 뛰어넘어 사람들의 인식과 개념을 바꿀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박 교수의 말에서 토론의 정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대학주보 임상빈·한유희 기자 2007.03.30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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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목련꽃이 질때
글쓴이 : 어린왕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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